출처 - 픽사베이
어제는 피자를 먹다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어요. 신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시켜 봤는데, 빵 끝부분에 팥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팥이 아니래요. 충남 ‘계룡’에서 먼 길을 달려 온 ‘팥’이라고 해요. 어쩐지 더 달큼하고 보드라운 게 뭔가 다르긴 다르다 싶었거든요.
사실 고백하자면, 계룡 팥이 유명한지 처음 알았어요. 아니, 계룡에서 팥이 난다는 것조차 몰랐죠. 그래서 찾아보니까, 계룡에는 ‘두마면’이라는 곳도 있데요. ‘두마’(豆磨). ‘콩 두’에 ‘갈 마’ 자죠. 한자 그대로, 팥이나 콩을 가는 마을이라고 해요. 이성계가 인부들에게 팥죽을 끓여 먹였다는 옛이야기도 전해 지고 있구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계룡에는 ‘팥죽 거리’까지 있대요. 그래서 다음 휴가 때는 계룡에 꼭 가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피자 한 조각이 순식간에 저를 먼 계룡까지 이끈 셈이죠. 그런데 이런 걸 바로, ‘로코노미’라고 부른다더라구요?
네.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요. 합성어에요. 지역을 뜻하는 영어 로컬 (Local)과 경제(Economy)를 합친 말이래요. 지역의 특색이 담긴 상품이나 공간을 소비하는 걸 뜻해요.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 볼게요. 얼마 전까지 TV에서 이런 광고 보신 적 있죠?
실제 농부들이 나와서 “진도 대파가 최고랑께~” “진주 고추가 맛있다 아이가!”를 외치며 흥겨워하는 광고요. 저도 볼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났는데요. 이들 지역의 특산물을 넣은 버거가 소위 ‘대박’이 났다고 해요. 출시하자마자 품절 사태를 기록하고 그 인기에 힘 입어 이듬해에 재출시까지 됐대요. 대파를 넣은 햄버거는 무려 280만 개나 팔렸구요.
출처 - 맥도날드 공식 홈페이지
사실, 진도는 전국 대파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곳이에요. 특히나 이곳에서 나는 대파는 조직이 치밀하고 해풍을 맞고 자라 맛이 풍부한 게 특징이라는데요. 이전까지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진도 대파의 참맛을 알았다면, 이제는 전 국민이 진도 대파의 진가를 알게 된 셈이에요. 숨어있던 지역의 특산물이 새로운 상품으로 태어나서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것, 이런 걸 ‘로코노미’라고 부르는 거죠.
맞아요. ‘로코노미’ 라는 용어 때문에 뭔가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것 같지만요.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 로코노미 상품을 먹거나 이용해 봤을 수 있어요. 실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로코노미 활용 식품 관련 U&A조사」에 따르면요. 10명 중에 무려 8명이 로코노미 식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해요.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로코노미 상품을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다른 기업들도 활발하게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동네 편의점에 가 보시면, 지역 이름이 붙은 상품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다양하진 않았지만,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들은 계속 있었어요. 일례로, 막걸리가 그렇죠. 보통 지역에서 재배되는 쌀이나 특산물을 첨가해서 애주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왔어요. 하지만 로코노미는 단순한 특산물이나 특산품 소비와는 조금 달라요. 그 중심에 MZ세대가 있거든요.
MZ들은 물건이 지닌 ‘가치’에 돈을 쓰는 경향을 보여요. 이를 ‘가치 소비’라고 부르죠. 같은 상품이라두요. 윤리적으로 올바르거나 특별한 경험, 이야기가 녹아든 상품을 고른다고 해요. 지역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점과 다소 생소한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했다는 점이 MZ세대들에게 가치 있게 받아들여진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일단, 소비자의 입장에서는요. 그 지역에 가지 않고도 쉽게 특산물을 맛보는 경험을 충족시켜 주고요. 기업에서는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상품이나 브랜드를 개발할 수 있어서 좋죠. 무엇보다도 지방 소멸화로 지역 경제까지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지역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서로 ‘윈(Win)-윈(Win)’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단지 새로운 맛과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제품의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하거나, 품질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될 텐데요. 그렇게 되면, 단지 상품 하나의 이미지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그 상품과 연관된 회사와 지역의 이미지까지 함께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로코노미’를 넘어, 이제는 ‘하이퍼 로코노미’ 라는 말도 나와요. ‘극도의’라는 뜻의 Hyper와 ‘로코노미’가 합해진 말인데요. 로코노미보다 더 좁은 지역의 문화가 깃든 상품을 소비하는 걸 말해요. 한 마디로, ‘지역’보다 더 좁은 ‘동네’ 생활권에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부산에서는요. 동네 잡지들이 활발히 발행되고 있어요.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는 ‘이야기 공작소 부산’ 시리즈로 ‘지역구’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또, 기장군 문동생활권 어촌 신활력 증진 사업 앵커 조직 현장사무국이 발행하는 잡지 ‘문오성’도 있구요. 경기도 의왕 갈미문화마을이 만든 《동네 잡지 내손동》이라는 책도 있다고 해요. 광주광역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우리 동네 문화유산 해설사’ 과정을 운영 중이구요.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에서는요.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우리 마을 문화유산 바로 알기’라는 주제로 ‘우리 동네 탐방’ 행사를 진행했다고 해요. 우리 동네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거죠.
결국, 로코노미는 그간 촌스럽다며 무시했던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에 눈길을 맞추고 마음을 맞대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로코노미가 활성화돼서 숨어있는 우리의 특산품과 이야기들이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해요.